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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섬 해변가의 화창한 오후. 인적 없는 이 외딴 섬에 장정 두 명이 고급 여객선을 타고 들어왔다. 따갑지 않게 적당히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 금발의 남자는 온통 빛났다.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은 햇볕을 모두 흡수해버릴 듯한 올블랙이었다. 그들은 배에서 내려 섬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울창한 푸른 나무들 사이에 숨어있던 호화스런 별장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나온 그들은 처음 도착했던 해변으로 다시 돌아왔다. 검은 남자는 나무에 해먹을 치고 누웠고 금빛 남자는 그의 옆에 초록색 비치체어를 펴고 앉았다. 작은 날짐승이 날아가는 소리와 나뭇잎을 간지럽히며 스륵스륵 지나가는 바람소리들. 잔잔한 소음들이 그들의 적막을 대신해주었다. 띳띳거리며 로마리오와 문자하던 디노는 슬쩍 고개를 올려 스승을 바라봤다. 그는 왠만해선 거의 벗지 않는 모자를 벗어 얼굴 위에 살짝 올려놓고 잠을 자는지 미동도 없었다. 그모습에 디노는 빙긋 미소를 짓곤 조용히 일어나 스승의 해먹에 바짝 달라붙었다. 그러고선 모자 옆에 삐져나온 동그랗게 말린 구렛나루를 살살 잡아당기며,
"리보온.." 하고 조근조근 달래었다.
그러나 꼼짝도 하지 않는 남자. 다시 몇 번이고 디노는 그의 몸 여기저기를 쿡쿡 찌르며 불렀지만 반응은 없었다.
"어이, 스승..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오기가 발동한 디노는 마지막 방편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자를 집어 들어내버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당연히 남자의,
"뭐야~자고 있던 거 아니었어?"
잠든 얼굴이 아닌 뻔히 눈을 뜨고 당황한 디노의 표정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입가엔 짜증과 재미가 조금씩 섞인 웃음이 걸려있었고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분위기에 디노는 잘못 걸렸구나 싶어 급히 사과하기 시작했다.
"미..미안! 심심해서 좀 장난친건데..으아 한번만 봐주라.."
"야 디노."
"으악!"
리본이 손을 뻗자 지레 겁을 먹고 뒷걸음질하다 엉덩방아를 찧은 디노. 스승은 그런 제자의 모습이 한심한 듯 혀를 차다가 때리려는 게 아니니 가까이 와보라 했다. 그말에 의심반 걱정반으로 쭈뼛대며 다가선 디노는 처음으로 그의 스승을 내려다 마주본 생경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누워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스승의 얼굴은 정말이지 근사했다. 히트맨이라는 무시무시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생채기 하나 없이 희고 깨끗한 피부에, 까만 머리칼과 깊은 눈동자. 그리고 깔끔하면서도 남자다운 굵은 선들이 디노의 눈을 사로잡았다.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그 시선에 리본은 디노의 오른쪽 볼살을 살짝 꼬집었고 곧바로 울상을 한 채 볼을 감싸쥔 그에게 무심히 말을 던졌다.
“카발로네 말야. 조직은 잘 돌아가고 있는 거냐.”
“아으으..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누구긴, 한낱 사고뭉치지.”
리본은 기가 찬다는 듯 피식 웃었고 엄연한 성인임에도 늘 아이 취급을 하는 그의 태도에 발끈한 디노가 툴툴거렸다.
“나도 다 컸다고 리본..너한테서 졸업한지도 꽤나 되었고 말이지..사고뭉치라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앞으로 열 보.”
“뭐?”
“걸어갔다 와.”
“뭐야 갑자기..”
의아해하면서도 말은 잘 듣는 디노. 그러나 그가 발을 떼자마자 제발에 걸려 딱딱한 바닥 위로 철푸덕 넘어졌다. 두어 걸음만 더 떼었더라면 그나마 조금 푹신한 모래가 깔려있던 거리였다.
“봤냐. 넌 부하가 없으면 뭐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고뭉치야.”
“으으..아냐! 지면이 너무 울퉁불퉁해서..”
“인정은 또 어지간히도 안 하고 말이지. 너도 참 골치다.”
리본은 그렇게 말하며 해먹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선 엎어져있는 디노에게 따스한 손길을 뻗었고,
“리..리본.”
그가 감동받으려는 찰나 철컥,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가 코앞에서 들렸고 디노는 리본의 손에 어느새 총이 들려져 있는 것을 아주 조금 늦게 알았다.
“셋 셀 동안 일어나라. 꾸물대면 죽는다.”
“!!”
리본은 리본이었다. 아기나 어른이나 그는 한결같은 스파르타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고 옛제자에게나 현제자에게나 상관없이 모두를 평등히 무섭게 대했다. 때문에 금발의 남자 역시 츠나처럼 조건 자극에 의한 무조건 반응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14살, 그 어릴 적 만났던 아기에게 벌벌 떨었던 것처럼 지금도 그에 대한 두려움은 떨칠 수가 없었다. 디노가 벌떡 일어서자 리본 역시 해먹을 털고 일어났고 먼저 바닷가 쪽으로 걸어가며 따라오라 명했다.
“아까, 잠시 꿈을 꿨다.”
“응? 방금 전에 정말 잠들었었어?”
“그래.”
“아아..깨워서 미안해.”
“아니 고마웠다. 정말이지 다신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거든.”
하얀 거품이 바글바글 일어나는 약한 파도 가까이로 두 남자는 걸었다. 모래는 입자가 아주 고와 걷기에 부담이 없었고 해풍이 불어 바다내음을 가득 담은 바람이 그들의 코를 스치고 밀려났다. 조용히 뒤를 좇던 디노에게 리본은 넌지시 말을 꺼냈고 진지한 그의 말에 디노 역시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또..체커페이스야?”
“아니. 좀 더 지독한 놈이었다.”“설마..그게 누구야?”
“...”
리본은 잠시 침묵했다. 해변길을 따라 걷다보니 디노는 신발 안으로 자꾸 모래가 따라들어오는 것을 느꼈고, 남자가 침묵한 틈에 잠시 그를 불러세우고선 몸을 숙여 신발을 탈탈 털어냈다. 그때 두 발자국 정도 앞서 있던 리본이 디노에게 다가와 몸을 낮추었다. 제법 정갈하고 깔끔한 행동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디노의 다리를 잡고 손으로 모래 알갱이를 털어주는 리본. 그러나 갑작스런 호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발을 잡혀 무게중심을 잃은 디노가 기우뚱하며 리본의 어깨에 손을 터억 짚었다. 1초도 안 되어 화들짝 놀라 리본에게서 손을 뗀 그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연신 사과했다.
“어어..미안..가, 갑자기 이러니까..”
“잡아도 돼.”
“어?”
“멍청아. 내가 벌레냐. 어깨 정돈 잡아도 된다고.”
리본은 어깨에서 손을 뗀 행동에 기분이 나빴는지 디노에게 우선 한차례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디노는 그게 리본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n년 눈칫밥으로 알아차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남자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스승의 어깨는 넓고 단단했다.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그의 강인함이 느껴져서, 그의 나약한 제자는 자신마저 든든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어쩐지 조금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것은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 디노의 마음이 뭐든 간에 상관없는 듯이, 리본은 그의 발을 정리해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넌 로마리오를 어떻게 생각하냐?”“그야 두말 할 것 없는 내 소중한 부하지! 어린 시절부터 쭉 옆에 있어준 녀석이니까.”
“만약 그런 녀석이 네가 구할 수 없는 위험에 처했을 때는 어쩔 셈이지?”
“그럼....그래도 내가 어떻게든 구하겠어! 그냥 놔둘 순 없으니까 말야. 내가 보슨데 당연하잖아.”
“여전하군, 넌.”
리본은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렸다. 신발을 다시 신겨주고 일어선 리본은 자신의 제자를 무심히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꿈에 나온 지독한 녀석 말야. 뭐든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서 탈이었다. 한창 전투 중이었는데 녀석 덕에 지루하게 됐지.”
“??”“18개월 아기도 다 자기가 하겠다고 떼쓰지 않아. 혼자서 어떻게든 하겠다고 큰소리치던 그놈은 보기좋게 죽었지. 죽은 녀석은 우리 팀의 핵심 인물이었는데, 수많은 패밀리들이 전사(戰死)장면을 두눈으로 목격했다. 분위기가 어떻겠냐?”
“그건..비극이지만, 명예롭다고 생각해. 그사람이 그래야 했던 상황이라면 말야..”디노는 사뭇 진지하게 리본의 얘기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은 리본이 처음 디노를 만날 때와는 많이 달랐다. 큰 눈망울엔 사랑받고 자라 구김살 하나 보이지 않았던 병아리. 하지만 알의 포근함에 취해 계속 자라길 거부했었지. 리본은 그를 살게 하고자 했다.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닭이 되어야 한다. 자연의 이치였다.
“디노. 뭐든 다 네가 하려고 하지 마라. 가끔 네 사람들한테 기대도 좋아. 의지한다는 건 위험하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
“내가 살아있는 한은 계속 네 못난 짓을 감시할 테니까, 아까처럼 내 어깰 잡아도 좋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져 바다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고 그들 곁에 앉아쉬던 흰 갈매기들은 떼를 지어 날아올라 저 멀리로 유유히 사라졌다. 디노는 하늘과 바다에 걸쳐 펼쳐진 화려한 붉은 놀을 쳐다보며 이것이 꿈일까, 하고 잠시 생각했으나 이내 자신의 머리 위에 얹어진 커다랗고 따뜻한 손의 감촉에, 이것이 꿈이 아님에 감사했다.

written by 장미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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