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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희고 넌 흰색을 사랑했다.

 큐브를 가져가 구석에서 맞추던 그가 의자에서 내려왔다. 벌써 질린 건가 싶어 그를 바라보자 그는 의외로 웃음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모든 면을 맞춘 큐브를 내밀었다. 붉고, 푸르고, 노랗고, 흰 큐브는 통일성이 없었다. 완벽하게 본래 모습으로 나타난 큐브를 받아들었다. 그는 내게 큐브를 건네주는 순간까지도 흰 부분을 하늘을 향해 내밀었다. 다 맞췄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그는 곧 무료한 웃음을 지으며 작업실을 맴돌았다. 장난감을 찾아다니는 아기처럼 재밌는 물건을 찾을 때까지 어슬렁거렸다.

  “아저씨, 놀아줘.”

 결국은 나였던 건가.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그를 흘겨보고 그의 손을 떼어냈다. 안 돼. 왜요? 일 때문에? 응, 그러니까 오늘은 이만 돌아가. 그는 입술을 삐죽 내밀어 보였다. 어쩌라고. 그에게 몹쓸 심보를 발휘해 그를 몰아붙이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낡은 의자에서 못이 흔들렸다.

  “나도 손님인데….”

  “오늘 말고 내일 오라고 했는데 네가 말 안 들었잖아. 아무튼 오늘은 안 돼.”

  “하지만 형이 원래 한 번에 해야 잘 나온다며. 괜히 삐뚤빼뚤하게 나올까 걱정된단 말이야.”

  “걱정 마. 나 못 믿어? 그리고 오늘 네가 타투 하러 온 거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거든?”

  “그래도 말이 나왔으니까 오늘 하고 싶어.”

  “또 무슨 소리 들어도 난 몰라. 옷 벗고 누워.”

  그가 흰 니트를 벗기 시작했다. 재질이 조금 까슬한 니트가 그의 살결을 벗어나자 그의 등판이 드러났다. 확실히 어제에 비해 손바닥 자국이 사라져있었다. 알코올솜으로 그의 등을 닦아냈다. 시원한 알코올향이 콧망울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등은 꽤나 볼만했다. 잘 벌어진 어깨, 탄탄히 잡힌 근육, 흰 피부. 누가 봐도 탐낼만한 그런 등판이었다. 때문에 나도 그의 등판에 선을 따는 것이 좋았다. 나만의 스케치북으로 생각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바늘을 가져가자 그에게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파도 좀 참아. 그의 고개가 끄덕였다. 살이 타는 냄새가 나며 그의 등판 위로 나의 흔적이 그려졌다. 곡선이 펼쳐지자 어느새 번듯한 하나의 날개가 완성되었다. 그런 날개가 하나, 둘, 셋…. 셀 수 없이 늘어난 날개는 그의 등판을 꽉 채웠다. 마치 그가 원하던 대천사처럼.

  옷을 입는 그에게 넌지시 툭 던졌다. 만족스럽냐? 응. 마치 천사가 된 것 같아요. 천사라. 그래, 천사. 너의 등판을 수놓은 그 많은 날개를 보고도 천사를 생각해내지 못한 다면 그것은 아마 새머리가 아닐까. 그러냐. 사용한 바늘을 쓰레기통에 넣고 그에게 줄 연고를 가져가려 직원 휴게실에 들어갔다. 선반에서 3번째, 약을 가지고 나오자 그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가 떠난 자리에 close란 A4용지에 쓰인 투박한 글씨가 붙어있었다. 귀여운 놈. 김새는 웃음 뱉었다. 나중에 오면 차라도 대접해줘야지, 라 생각하곤 그가 써놓은 종이를 가게 문 앞에 붙였다. 유리문 앞에 붙은 종이 한 장이 우스꽝스럽지만 지친 나를 배려해준 그의 애교에 괜스레 웃음이 났다. 연고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가게를 정리했다. 큐브가 선반 3번째 칸으로 쏘옥 들어갔다.

 

사랑을 넘어 그것을 향한 너의 마음은 동경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추잡스러운 날씨에 일찍이 가게를 접고 집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정확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흰 바탕에 푸른색으로 병원 이름이 적나라하게 쓰인 환자복을 비에 젖어 들어온 수상한 남자에게 의문을 품을 기색도 없이 수건을 건넸다. 환자복을 입은 남자는 환자답게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고 떨어지는 기온에 입술색은 잃은 지 오래였다. 머리의 물기를 털어낸 그가 바싹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도와주세요. 네? 돌아가고 싶지 않아. 예상외로 앳된 목소리였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중얼거렸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곳은 아마 병원인 듯했다. 그를 어떻게 돌려보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충분히 이색 경험이었음에도 당황스러움에 기억이 묻힌 듯싶었다. 그가 잠든 병원 전화번호가 통화목록에 남았다. 그 이후로 그는 자주 찾아왔다.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었지만 그는 종종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해 몇 가지를 전해 들었다. 이 근처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과 그는 이제 막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병원을 끔찍이 싫어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외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가끔 전화로 말을 나누지만 무미건조한 이야기뿐이었다. 밥은 먹었어? 네. 오늘은 제발 찾아오지 마. 싫어요. 따위의 소소하고 쓸데없는 말이었다. 무미건조하지만 친근해진 우리 사이는 말 따위에서 느껴졌다.

  전화기가 울리고 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유명한 타투 아티스트 맞아요?”

  “그래. 맞다니까? 넌 내 작업실에 늘 오면서 뜬금없이 그런 건 왜 물어.”

  “그럼 나 하나만 부탁할게요. 저도 타투 하고 싶어요.”

  “어린놈은 안 받아.”

  “천사, 응, 천사 날개로 부탁해요. 등을 꽉 채울 만큼 많이…….”

  작아지는 그의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묻고 싶었지만 구슬픈 목소리가 물방울로 변하자 나는 입을 봉해버렸다. 알겠어. 그런데 이유 물어도 될까? 돈만 받고 일을 하던 내가 손님에게 처음 물은 말이었다. 왜,라는 질문은 손님들을 화나게 했기에 늘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변덕이라고 생각해야겠다.

  “왜냐뇨. 천사는 아름답잖아요. 전 천사가 좋아요. 그리고 될 수 있다면 천사가 되고 싶어요.”

  하늘을 날아 이 세상을 빠져나가고 싶어요. 끊기 전 5분 뒤에 그가 이어 말했다. 천사가 되어 하늘을 날아 세상을 탈출하고 싶다니 어리석은 답이었지만 그와 참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새하얀 것이 천사 날개를 단다면 정말 천사 같았으니까. 천사가 좋아요. 그리고 되고 싶어요. 난 내 손으로 인간을 천사로 재탄생시키게 되었다.

천사가 날개를 펼쳐 하늘을 안았다.

  지나가던 길에 그가 좋아하는 흰색이 눈에 띄었다. 지나가던 회사원의 흰 셔츠, 마트에서 할인을 하다던 우유팩 등 모든 흰색에 네가 비춰 보였다. 그에게 문자를 보내려던 손을 멈추고 꽃집으로 들어갔다. 충동적인 성격은 10대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꽃을 보고 좋아할 그의 얼굴을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꽃다발을 주문했다. 저 꽃 포장해주세요. 첫 병문안 선물은 꽃다발이 될 예정이었다.

 묵직한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전화가 걸려왔다. 꽃을 고쳐 안고 전화를 받았다.

 “아저씨, 오늘도 일해요?”

  “그래. 이놈아. 그런데 말이야…….”

  “그래요? 아쉽다. 오늘도 가면 잔소리 할 거죠? 그러니까 안 가야지~.”

 한껏 들뜬 목소리가 내 말을 끊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에게 반문했다. 그는 여전히 웃었다. 언제나 날 희롱하듯 흘리는 그 웃음으로 날 놀리고 있었다. 나 놀고 싶어요. 몸 다 나으면 놀자니까? 우선 네 몸이 먼저잖아. 통화 내내 언쟁은 끊이질 않았다. 오늘따라 말이 안 통하는, 원래 잘 통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유독 이상했다.

  “야. 백란! 에이씨. 몰라, 끊어!”

  결국 오늘 병문안을 간다는 말을 하지 못 했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서프라이즈로 놀래켜줄 심산이었다.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변덕이었다. 놀러오지 않은 그의 변덕과 갑작스레 그를 찾아가는 나의 변덕. 삐뚤어진 리본을 매만져 단정한 모습으로 고쳤다. 꽃잎이 하나 떨어졌다. 도로 위에 안착한 흰 꽃잎은 소리가 없었다. 가벼운 것에 소리가 날 리 없었다. 그만큼 한 떨기의 꽃잎은 가치가 없었다. 흰 꽃잎 위로 트럭이 지나가자 타이어 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서프라이즈. 그래, 이 광경은 서프라이즈라는 단어로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적절한 단어가 무엇이 있을까? 딱딱한 글자로는 전혀 전해질 리 없는 인간의 감정이 요동쳤다. 병원이 어수선했다. 누구의 죽음도 전염병도 아니었다. 오직 갓 스물이 된 소년의 모습을 가진 남자 때문이었다. 병원 옥상에 서 있는 그, 백란을 말리기 위해 병원 관련자와 경찰이 동원되었다. 건물 주변을 인간 벽이 둘러쌌다. 만리장성보다 더 길게 사람들의 입이 오르내렸다. 자살기도인가 봐. 어쩜 젊어 보이는데. 안타까워라. 거기 남자분 내려오세요! 우선 진정하고 의사와 상담을 진행하도록 해요! 백란 환자분 어서 내려와요! 온갖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듣고 싶지 않았다. 속이 미식거렸다. 당장이라도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내고 싶었다.

  그는 여전히 아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위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기만과 오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그였다.

  그의 발이 움직였다. 맨발에 콘크리트 가루가 묻어 아프진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이 되었다. 정작 지금 걱정할 건 그런 사소한 게 아닌데. 사람들의 말은 들리지 않는지 그가 난간에서 몸을 뗐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천사는 말했다.

“나는 고결하고 순수해. 결코 너 따위가 손댈 수 없어.”

  큐브를 가지고 놀던 그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는 부정하며 큐브를 맞추는데 열중했다. 고결, 순수, 손을 대다, 그가 말한 단어들을 속으로 곱씹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어느 책에도 없던 말이었다. 오로지 그가 해석한 순수한 천사의 모습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천사는 그런 인물이었다. 모두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는 순백의 천사가 아닌 그 나름대로의 천사님. 그의 뒤에 새긴 날개가 형상화된 것 같았다. 흰 날개가 거대하게 펼쳐졌다. 차마 볼 수 없던 나는 무릎을 꿇고 그를 믿었다. 그는 아마 정말 천사가 아닐까.

하늘을 안은 천사는 하늘에게 배반당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은 걱정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는 크게 외쳤다. “난 천사에요.” 멍청아, 네가 왜 천사야. 고작 등에 날개 문신으로 도배하면 다 천사야? 그를 믿던 나의 신뢰는 전부 무너져 내렸다. 당장 내려와. 차마 뱉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제발 돌아가라고. 병실에 들어가 가만히 누워서 내가 가져온 병문안 선물이나 받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발이 허공에 멈추었다.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를 바라보던 모두가 눈을 찌푸렸다. 해를 등진 그의 뒤에서 빛이 났다. 정말 어쩌면 날개일지도 모를 빛이 주변으로 펼쳐졌다. 아아, 저것이 천사인가. 사람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인간에서 천사가 되려는 어리석은 범법자를 내리 끌었다. 지구가 내린 심판이었다. 중력의 손길이 그의 발을 잡아당겼다.

타락천사

  타락천사는 아마 천사를 믿던 사람을 뭉갠 천사라 생각한다. 그날 본 처음이자 마지막의 천사의 날개를, 내 손으로 만든 타락천사를 백란이라 불렀다. 천사는 나를 자신의 탄생에 이용하고 끝에는 무참히 짓밟았다.

안녕, 나의 천사.

  Close, 네가 쓴 종이를 문에 붙이고 가게를 나섰다. 네가 좋아하던 흰 꽃을 들고 널 찾았다. 왜 네가 흰색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건 아마 내게 미리 말한 준비 신호였을 테지? 결국 인간은 천사를 품을 수 없었다. 내가 품기엔 네 이상은 너무 컸기에. 우린 애초에 섞일 수 없는 존재였다.

 

20XX, XX, XX. 프리모.

오늘 네가 머물렀던 자리에서 흰 깃털을 주웠어. 들렸다 간 거니?

있잖아, 만약 네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난다면 난 네 날개를 꺾을 거야.

하지만 지워지진 않을 거야. 그건 너와 내가 만든 문신이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우리의 족쇄겠지.

written by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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